김수임  2017-07-26 09:57:07, VIEW : 578
장례식 후 4주만에 중간에 깨지 않고 잠을 잤다.
지난 한달 동안 거의 한시간에 한번씩 깨어났고
2주째 까지는 깨어나면 울고, 울다 지쳐 잠들고 가 반복됐다.

어젯밤 공기가 좋고 열대야가 아니어서 일 수도 있고
어제 하루 집에서 간간히 글만 쓰고 다른 것을 안해서 일 수도 있다.

비비드 드림vivid dream 은 뇌가 과잉으로 예민한 사람이 꾸는 약한 정신병이란 말을 들은적이 있다.
나는 비비드 드림이 아닌 꿈을 꾼적이 없고
촉감까지 너무나 생생한 경우다.
어릴땐 공포스러운 꿈도 자주 꿨지만 대부분은 어디에서도 본적 없이
아름다운 화면의 꿈이 대부분이라 오히려 이런 꿈을 기다린다.

꿈을 꾼다는 건 숙면을 하지 않은 상태라고들 하는데
정말 그런것이면 나는 일평생 숙면을 경험하지 못했다.

어젯밤 오랜만에 손 뻗으면 지금이라도 만질 수 있을듯한 생생한 꿈을 꿨다.

아빠가 나온 꿈이었다.

전망이 너무나 대단한 고급 고층 아파트였다.
꿈에서는 이 아파트를 엄마가 구해 놓은것 이었고 엄마는 볼일이 있다며 아침일찍 집을 나갔다.
나의 모습은 지금의 나였지만 엄마의 모습은 40대의 모습이었다.
꿈 속에서 엄마와 내가 같은 연령대로 같은 공간에 있는 것이었다.

집의 구조는 현재 내가 살고 있는 구조와 흡사했지만
비교도 안될 정도로 고급스럽고 층고가 높았다.
내 방에서 나와 거실쪽으로 나가니 소파에 아빠의 어머니,
그러니까 한번도 본 적 없는 친할머니가 누워계셨고, 그 옆에는 수강생 얼굴을 한 간병인이 있었다.
간병인은 아빠가 안방에서 주무시고 계신다고 들어가 보라고 했다.

거실 벽의 한면은 통유리 였다.
나는 안방으로 가기 전 거실 창 쪽으로 가서 전망을 내다 봤다.
시야의 중앙은 밀림같은 울창한 녹지대였고,
양옆은 우리 아파트와 같은 고층 빌딩들이었다.
녹지대의 끝, 지평선에는 오렌지색의 야외 무대같은 것이 있었고
그 뒤로는 아주 파랗고 쾌청한 하늘이 펼쳐져 있었다.
하얀색 아크릴 물감으로 그려놓은 듯한 구름이 둥실 둥실 떠있었다.

안방 문을 최대한 살며시 열었다.
안방엔 살구색과 보라빛이 섞인 석양 빛이 창을 통해 들어오고 있었다.
아빠는 베이지와 살구색 빛의 침대에 반듯하게 누워있었다.
이불이 얼굴의 반을 덮고 있었다.
나는 아빠 얼굴을 확인하려고 이불을 살짝 내렸다.
아빠의 얼굴은 30대의 얼굴이었다.
내가 2학년 정도 됐을때, 사우디에서 돌아와
한동안 나와 집에서 많은 시간 놀아주었던 그 시절의
잘생긴 청년의 모습이었다.
입고 있는 셔츠 또한 어릴적 아빠가 입었던 것 같은 베이지색 셔츠다.
아빠의 멋진 모습을 한참 바라보다 아빠의 얼굴에 손을 대보았다.
따스하고 너무나 보드랍다.
고개를 숙여 아빠의 이마에 내 이마를 맞대었다.
잠시 그러고 있다가 몸을 돌려 침대 옆 탁자에 놓여있는 노트에
글을 적었다

'아빠, 수임이 왔다 가요'

한 쪽 탁자에 놓여있던 자명종 시계가 소리를 낼듯말듯 하여
나는 시계의 알람을 끄고 다시 탁자에 놓았다.

행거에 걸려있는 옷들 중 살구색 가운 하나를 조용히 꺼내
몸에 걸쳤다.

잠깐 잠을 깼다가 다시 잠들었다.
꿈이 이어지고 아빠가 잠에서 깨어난 듯 하다가
순식간에 너무나 개연성없는 황당한 전개가 되면서 다시 잠을 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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